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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아니아

나우루 공화국과 인광석, 한국과의 관계

by 강강돌이 2023. 3. 17.

지금까지 나우루 공화국에 대한 소개와 역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이제는 나우루 공화국과는 뗄 수 없는 인광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04년 이전과 2004년 나우루의 경제위기, 인광석의 2차 채광, 한국과의 관계 순으로 알아보겠습니다. 

 

2004년 이전 상황

나우루는 독립 이후 국영기업인「Nauru Phosphate Corporation」을 통한 인광석 채굴로 1970년대에는 세계에서 1인당 GNP가 가장 높은 국가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1985-1986년 167만 톤에 달하던 인광석 생산량은 2001-2002년 162,000톤으로 급감하였으며, 급기야 2003년에는 생산이 중단되고 만다. 때아닌 짧은 번영과 몰락을 경험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래 인광석 생산량이 급감하고 가까운 장래에 자원이 고갈될 것이 명백히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나우루 정부는 외채를 빌려 모자라는 지출에 사용하는 등 방만하고 불투명한 재정 운영을 지속하였다. 또한 인광석 수출로 인한 수익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된「Nauru Phosphate Royalty Trust」는 기록적인 해외투자 실패 및 부적절한 운용으로 대부분의 자산을 상실하였다. 2005년 ADB는 1991년 13억 호주달러에 달하던 NPRT의 자산가치가 2002년에는 1.38억 호주달러로 감소하였다고 보고하였다.

 

2004년 나우루 경제 위기

나우루 정부는 2004년 4월 인광석 수출 격감 및 재정운용 실패로 10억 호주달러 상당의 부채를 지고, 정부 취업자들에 대한 봉급을 지불하지 못하는 디폴트 상태에 직면하였다. 이에 따라 2004년 8월 개최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서 나우루 지원을 위한 PRAN(Pacific Regional Assistance to Nauru)이 설립되었다. 호주, 뉴질랜드, UNDP 및 대만 등이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당면한 재정위기를 모면하였다. 2005년 11월 30일 및 2007년 7월 26일 두 차례 PIF 주관으로 공여국 라운드 테이블 회의가 나우루에서 개최되었다.

 

인광석 2차 채광 모색

2005년 호주의 비료생산회사인 Incitec Pivot사는 나우루 정부가 인광석 재개발을 위해 설립한 회사에 약 450만 달러를 투자하여 인광석 재개발에 착수하였으며, 2006년 9월부터 인광석 수출을 재개하였다. 기존 채굴지에 대한 2차 채광 및 주거지 재조정을 통한 채굴 시 향후 약 30년간 채굴이 가능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으나, 관련 설비 노후화 및 인프라 미비로 인한 문제가 있는 상태이다. 인광석은 2012년 519,000 톤을 생산하였으며, 이는 인광석 채광을 재개한 이후 최대치이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와 나우루의 외교관계는 1979년 8월 20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양국 모두 상대국에 상주 대사관은 설치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피지대사관에서 나우루를 겸임(2008년 6월 20일부터 주파푸아 뉴기니대사관에서 주피지대사관으로 관할 변경)하고 있다. 나우루는 1982년 2월 25일에 북한과 수교하였다. 대한민국과 나우루는 1979년 8월 20일 수교 이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나우루는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 왔다. 대한민국은 국제무대에서의 지지를 확보하고 어업분야의 협력을 나우루는 개발원조 확보가 주요 관심사항이다. 한국과의 경제·통상 관계는 삼성물산 등 우리 기업에서 과거 나우루의 인광석을 수입하기도 하였으나, 인광석 산출 감소로 현재 양국 간 무역규모는 미미한 편이다. 나우루의 작은 경제규모와 낮은 구매력 및 한국-나우루 사이에 정기 항로가 없어 운송비용 부담 등을 고려할 때 교역이 확대되거나 잠재력은 크지 않다. 나우루부터의 수입은 주요 수입 품목인 인광석 생산이 줄어들면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나우루 정부는 2014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한국 기업이 나우루 항만 건설에 참여하도록 지원을 요청해 오고 있으나, 채산성이 낮아 참여업체가 없는 상황이다. 나우루에 상주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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