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스리랑카의 역사에 대해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1979년부터 2005년까지 대통령이 집권한 순서인 자야와르데나 집권기, 프레마다사 집권기, 쿠마라퉁가 집권기 순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1979.9월-현재)
자야와르데나 집권기
1979년 9월 7일 대통령 중심제의 신헌법이 공포되고 나라 이름을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자야와르데나 대통령은 SLFP의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탈피하여 획기적인 親서방․자유개방 경제정책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외자도입을 확대하고 외국인의 직접 또는 합작투자를 장려하였습니다. 투자촉진지대 설치, 마하웰리(Mahaweli) 유역 종합개발사업 등을 통하여 연 5~9%의 높은 경제성장 지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정책에 대해 야당과 좌파계열의 단체들은 인플레이션 등 생활조건 악화를 이유로 파업을 조직하고 UNP 정부에 도전하였습니다. 1982년 10월 20일 조기 대선을 통해 자야와르데나 대통령이 재선 되었으며, 1983년 12월 22일 국민투표에 따라 1977년 7월 구성된(1983년 8월 임기 종료) 국회의원 임기를 1983년 8월부터 1989년 9월까지 6년간 연장하는 4차 헌법개정안을 확정하였습니다. 1987년 7월 29일 자야와르데나 대통령은 타밀 인종분규의 종식을 위하여 간디 인도 총리와 평화협정 체결하였습니다. 이어서 1988년 1월 지방의회(Provincial Council) 선거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이에 1988년 4월 28일 중북부주, 우바주, 북서부주, 사바라가무와 주에서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1988년 12월 19일 자야와르데나 대통령의 임기 만료에 따라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습니다.
프레마다사 집권기
개표결과 여당 UNP의 프레마다사(Premadasa) 총리가 257만 표(지지율 50.4%)를 획득, 임기 6년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89년 1월 2일 취임한 프레마다사 대통령은 반정부단체들의 사회전복 활동으로 피폐해진 국가경제를 재건하고 사회불안 불식, 정국안정 도모하였습니다. 1989년 2월 15일 총선 실시, 여당 UNP가 총 225석 중 125석을 확보(55.5%)하며 승리합니다. 1991년 5월 11일 전국 규모 지방의회 선거에서 여당이 안정적 의석을 확보합니다. 프레마다사 대통령은 빈민구제 운동(Janasaviya), 지역경제개발 운동(Gamudawa), 외국인 투자유치, 수출 위주의 신산업화 전략(New Industrialization Strategy)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타밀 일람 해방 호랑이(LTTE,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와의 내전과 각종 테러사건에도 불구, 1990년부터 외국인 투자 및 관광객 증가하였고 신산업화 전략 등으로 5% 내외의 경제성장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1993년 5월 1일 프레마다사 대통령이 노동절 행사 중 LTTE 자살특공대로 추정되는 청년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같은 해 5월 7일 위제퉁가(Wijetunga) 대통령이 직을 승계하였습니다. 1993년 5월 17 일 북동부주를 제외한 7개 주에서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UNP가 총 의석 380석 중 187석을 확보함으로써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위제퉁가 대통령은 정치 기반이 약하여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UNP의 내부분열 지속되었습니다. SLFP를 중심으로 한 야당연합인 인민연합(People’s Alliance: 이하 PA)은 135석을 확보하였습니다. 1994년 8월 16일 총선이 실시되었습니다. 야당연합(PA)이 국회의석 105석을 획득하여 94석에 그친 UNP를 누르고 승리(단독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하였습니다. UNP의 패배요인으로는 리더십 부족, 경제발전 정책에 따른 빈부격차 심화, 집권층의 부정부패, 장기 집권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 등이 거론되었습니다.
쿠마라퉁가 집권기
1994년 8월 19일 SLFP의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 총리(Chandrika Bandaranaike Kumaratunga, 이하 쿠마라퉁가)가 취임함으로써 UNP의 17년간 장기 집권을 깨고 정권 교체에 성공하였습니다. PA는 7석의 스리랑카 무슬림회의(Sri Lanka Muslim Congress, 이하 SLMC) 및 무소속 1석과 제휴하여 과반수 113석을 확보함으로써 내각을 구성하였습니다. 1994년 11월 9일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PA 후보인 쿠마라퉁가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12일에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1997년 3월 21일 지방선거 결과, PA가 지방의회 80%를 장악합니다. 1999년 1월 북서부지역 5개 주 지방의회 선거에서 집권여당 PA가 연이어 압승합니다. 이어진 1999년 4월 5개주 지방의회 선거, 6월 남부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PA가 압승합니다. 12월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약 51%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합니다. 야당대표 라닐 위크라마싱하(Ranil Wickremesinghe, 이하 위크라마싱하)는 43% 득표로 2위에 그칩니다. 2000년 10월 제11대 총선에서 집권여당 PA가 소수정당 Eelam People’s Democratic Party(EPDP) 및 National Unity Alliance(NUA)와 연합하여 제1당으로 재집권합니다. 그러나 2001년 6월 SLMC이 연정에서 탈퇴하자 PA는 소수당으로 전락합니다. 12월 제12대 총선에서 UNP가 대승을 거둡니다. PA의 쿠마라퉁가 대통령과 UNP의 위크라마싱하 총리 내각이 공존하는 ‘동거(Cohabitation)’ 정부 시작되었습니다. UNP는 SLMC와의 연정을 구성하여 United National Front(UNF) 정권을 출범시킵니다. 2003년 11월 4일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UNP 내각이 LTTE 측에 지나치게 양보하여 안보 상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3개 안보장관직(국방, 내무, 공보)을 접수하고 2004년 2월 7일 국회를 해산합니다. 2004년 4월 2일 실시된 총선에서 쿠마라퉁가 대통령의 통일인민자유연합(United People’s Freedom Alliance, 이하 UPFA)이 총 225석 중 105석을 확보하여 UPFA 정부가 출범합니다. 총선 시 PA는 JVP와 연합하여 UPFA 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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